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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대암 이태준선생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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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준 선생 약력

본문내용

  • 1883년 경상남도 함안 군북면 명관리 아버지 이질과 어머니 박평암의 큰아들로 태어남.
  • 1890년쯤 7살 서당 도천재에서 한학을 공부함.
  • 1897년쯤 14살 사촌교회에 다님.
  • 1903년쯤 20살 안위지와 혼인. 전후로 부모 모두 세상을 뜸.
  • 1904년 21살 큰딸 수남 태어남.
  • 1906년 23살 둘째딸 수용 태어남. 부인 안위지 죽음. 서울 김형제상회에 점원으로 취직.
  • 1907년 24살 세브란스병원 의학교에 입학.
  • 1909년 26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안창호 간호.
  • 1910년 27살 신민회 산하 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 가입해 활동함.
  • 1911년 28살 6월 2일 세브란스병원 의학교 제2회 졸업생으로 졸업. 6월 16일 92번째 의술개업인허장을 받음. 10월 중국 신해혁명. 그에 고무받은 이태준과 김필순은 함께 중국에 가서 항일독립운동에 몸담을 계획을 세움. 12월 말. 중국 난징으로 망명, 기독회의원에서 의사로 일함.
  • 1914년 31살 몽골에 감. 김규식, 유동열, 서왈보 등과 함께 비밀군관학교를 지을 계획이었으나 무산됨. 동의의국이란 병원을 열어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연락처로 삼음. 몽골 사람 70%가 넘게 고통받던 매독을 퇴치하면서 ‘붓다 의사’라 칭송받음.
  • 1917년 34살 몽골 마지막 왕인 보그드 칸의 어의가 됨. 몽골 주둔 중국군 가오 시린 주치의 겸임.
  • 1918년쯤 35살 한인사회당 지하당원으로 활동.
  •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군무총장 이동휘 휘하의 軍醫官 監務 직책
  • 1919년 36살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는 김규식에게 활동비로 당시 금액으로 2000원 댐.
  • 1920년 37살 초겨울,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가 상해임시정부에 지원하는 원조금 운반. 의열단에 가입. 폭탄 제조 기술자 마자르를 소개함으로써 의열단 활동에 기여.
  • 1921년 38살 2월 운게른이 이끄는 러시아 백위군이 올란바토르 점령.
  • 1921년 러시아 백위군 운게른 부대의 손에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