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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대암 이태준선생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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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준 선생 생애

본문내용

  • 대암 이태준 선생은 아버지 이질(李瓚)과 어머니 박평암(朴平岩) 사이에서 1883년 11월 21일에 경남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114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자(字)는 원일(元一) 호(號)는 대암(大岩)이다. 인천이씨 (仁川李氏) 족보에는 이태준 선생이 “뜻과 기개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인물이라 기록하고 있다.

  • 1883년 11월 21일 경남 함안에서 태어 났다. 1907년 세브란스의학교 (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에 입학하여 1911년에 제 2회로 졸업하였다.

  • 선생은 김필순, 주현칙과 함께 안창호 선생이 만든 "청년학우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세브란스 인턴으로 근무하던 중 1912년에는 중국 남경으로 망명하여 '기독회의원'에서 의사로 일을 하다가 처사촌이 된 애국지사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1914년에 몽골 후레로 가서 '동의의국' 이라는 병원을 개설하였다.

  • 특히 '화류병'퇴치에 앞장섰고, 몽골 마지막 황제 주치의가 되었으며, 1919년에는 동골로부터 '에르레닌오르치르'라는 최고의 훈장을 받았다.

  • 1921년 2월 당시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러시아 백군에 의하여 피살당하니 38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선생의 묘는 성산인 보그트산에 있다고 전하며, 1980년 한국정부는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